이 세상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일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말로 형용하지 못하는 것들도 감성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있지요. 예술이 바로 그 예입니다. 예술은 그 자체로도 인정받지만, 뛰어난 예술론적 평가에 따라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지기도 합니다.
결국 예술에 관한 커뮤니케이션은 언어로 표현되는 것과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것 두 다에 의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요즘 사회 전반에 말의 중요성이 강조되다 보니 사람들은 침묵을 어색해합니다.
결국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해서 생기는 커뮤니케이션의 오류도 발생한다.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옆에서 해설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감성에 방해를 받습니다. 말하지 않는 것, 곧 침묵이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되기도 합니다.
말과 말의 사이
말이 존재하지 않는 말과 말의 사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하는지, 즉 침묵의 사용법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술이라는 감성 중심의 세계를 언어로 표현한 이론서가 있습니다. 감성과 언어라는 상반되는 두 가지 주제를 훌륭하게 고찰한다.
본래 예술이란 노하우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만약 예술가가 되는 방법이라는 노하우가 있다 해도 그 노하우를 터득하면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예술처럼 사람의 감성이라는 불확정적인 것에 호소하는 방법은 일반화하기 어렵고, 그 방법론을 가리키는 말 또한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일본 전통 가무극인 노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보입니다. 노는 관객 앞에서 어떻게 연기하는지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관객이 노를 즐길 상태가 아니라면 노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노에 성공하려면 객석이 어수선할 때는 연기를 하지 않았다가 객석이 가라앉고 관객 모두가 한마음으로 아직멀었나, 언제 시작하는 걸까 하며 악사들 쪽으로 주의를 기울일 때까지 침묵을 유지합니다.
이렇게 극에 대한 집중도가 정점에 달했을 때 무대에 오르면 관객들의 기대가 높아져 노를 즐길 마음의 준비가 되고 그날의 공연은 성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화에서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쉴 새 없이 말을 하다 보면 듣는 쪽은 피곤해지고 점점 이야기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반면, 잠시 입을 다물거나 말을 줄이면 상대는 무슨 말을 꺼내려는 걸까 하고 기대하거나 머릿속으로 상대방이 앞서 이야기한 내용을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침묵은 대화의 장
침묵함으로써 오히려 대화의 장을 만들고, 상대의 기분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침묵을 말의 사이라고 합니다. 연설로 대중을 선동했던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도 연설 전에 긴 침묵을 취했다고 합니다.
히틀러의 연설 영상ㅇ르 보면 그는 단상에 올라 연설을 시작하기 전까지의 약 30초 동안 침묵합니다. 청중은 히틀러가 단상에 오를 때 큰 환호성을 지르는데 히틀러의 긴 침묵에 이내 조용해지고, 언제 시작할까 하며 그의 말을 기다립니다.
곧이어 청중이 고용해지면 히틀러는 서서히 연설을 시작합니다. 청중은 곧 연설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남시란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때를, 반대로 여시란 상대에게 유리한 때를 말합니다. 어찌하든 노의 됨됨이가 좋거나 나쁠 때가 반드시 있는 법입니다.
이는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인과의 도리다. 즉 남시와 여시는 피할 수 없으며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는 노의 다치아이와 연관된 사고입니다.
노에는 복수의 연기자가 한 무대에서 연기하며 승패를 겨루는 다치아이라는 경연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예술가에게는 당대 유력가의 후원이 필수였기 때문에 다치아이에서의 평가는 유파의 존망을 결정짓는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다치 아이에서 이기려면 남시와 여시의 흐름을 읽고 연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황이 불리한 여시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 아미는 노에서 그다지 중요한 장면이 아니라면 굳이 이기려 하지 말고 여유롭게 연기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다가 바로 여기다 하는 곳에서 전력을 다하라고 권하는데요.
많은 합의와 협상을 하면서 여기에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합의와 협상에서 유리한 상황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사건에서도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남시와 여시
물론 전략을 세워서 언제나 유리한 남시에 있도록 애를 쓰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이기는 것도 아닙니다. 제삼자가 끼어들거나, 내 힘으로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상황도 생기기 마련이다.
이럴 땐 제 아미의 말처럼 그야말로 어찌할 수 없는 인과의 도리가 작용한 듯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흐름을 읽는 일은 합의와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중요한 작업니다.
지금 당장은 불ㄹ히해지더라도 불리한 상황이 계속해서 지속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당황하거나 감정을 격동시키면 시류를 읽지 못하게 된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으면서 인내와 침묵으로 잠잠히 변화에 집중하다 보면, 오래지 않아 기류가 유리하게 흐를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 지금이야 하는 순간에 자신의 카드를 내미는 것입니다.
오히려 남시일 때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야기가 유리하게 흘러 자신이 내민 조건이 무엇이든 받아들여지는 듯할지라도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남시에 있더라도 불리한 상황을 대비하며 단숨에 해결할 방안을 준비해 두어야만 합니다. 이렇듯 대화는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시와 여시를 파악하자
항상 남시인지 여시인지를 파악하고 침묵의 효과를 살려 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밀스러워야 피는 꽃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이는 예능이나 예술과 같은 전문 영역에는 저마다 비전으로 불리는 기법들이 있는데, 그 비밀스러움 때문에 커다란 효용이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이 기법을 비밀로 하지 않고 오늘 비밀 병기를 공개하겠습니다. 하고 말한다면 분명 진기한 뭔가 보여줄 거야 하는 기대치가 높아져서 오히려 시시해지고 맙니다.
TV를 보거나 공연장에서 웃음이 터지는 포인트도 이와 같습니다. 지금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게요. 하고 서론을 깐다면 시작하기도 전에 관객들의 기대치가 높아집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도 관객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 그다지 웃지 않게 됩니다. 반면, 미쳐 생각지 못한 타이밍에 느닷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내면 웃음이 터집니다. 무슨 말이든 하면 된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시길 바랍니다.